Ⅲ. 생태적 회개[216-221항]
Ⅲ. 생태적 회개
216. 그리스도교 영성의 풍요로운 유산은 이천 년에 걸친 개인과 공동체 체험의 결실로 인류를 쇄신하려는 노력에 값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 신앙의 확신에서 솟아나는 생태 영성에 관한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복음의 가르침은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살아가는 방식에 직접적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는 관념에 대하여 말하는 것보다, 더욱 열정적으로 세상을 돌보도록 영성이 불어넣어 주는 동기 부여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사실 우리에게 힘을 주는 신비 없이, 곧 “우리의 개인적 공동체적 활동에 자극과 동기와 용기와 의미를 주는 어떤 내적인 힘”151 없이, 오로지 교리만 가지고 이 위대한 일에 투신하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께서 교회에 주신 보화를 언제나 받아들여 증진시켜 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영성은 육체나 자연, 또는 세상의 실재에서 분리되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과 일치를 이루며 그 안에서 그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217. “내적인 광야가 엄청나게 넓어져서 세계의 외적인 광야가 점점 더 늘어가고 있습니다.”152 이러한 까닭에 생태 위기는 깊은 내적 회개를 요청합니다. 그러나 신심이 깊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일부는 현실주의와 실용주의를 내세워 환경에 대한 관심을 우습게 여기고 있음도 인정해야 합니다. 또 일부는 수동적이어서 자신의 습관을 바꾸려는 결심을 하지 않고 일관성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생태적 회개입니다. 이는 예수님과의 만남의 결실이 그들을 둘러싼 세상과의 관계에서 온전히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 작품을 지키는 이들로서 우리의 소명을 실천하는 것이 성덕 생활의 핵심이 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 체험에서 선택적이거나 부차적인 측면이 아닙니다.
218. 우리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범을 기억하며 피조물과 맺는 건전한 관계가 인간의 온전한 회개의 한 차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는 또한 자신의 잘못이나 죄, 악습, 태만의 인정, 그리고 참된 회개와 내적 변화를 요청합니다. 호주 주교들은 피조물들과의 화해라는 의미에서 회개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화해를 이루려면 우리의 삶을 성찰하며 우리의 행위와 방관으로 어떻게 우리가 하느님의 피조물에 해를 끼쳐 왔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회개, 곧 마음을 바꾸는 경험이 필요합니다.”153
219. 그러나 개인이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는 현대 세계가 직면한 매우 복잡한 상황의 해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개인은 도구적 이성의 논리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과 자유를 상실하여 결국 윤리 없이 그리고 사회와 환경에 대한 인식 없이 소비주의에 굴복하게 됩니다. 사회 문제들은 단순히 개인적 선행의 총합이 아니라 공동체의 협력망을 통하여 해결해야 합니다. 이 임무는 “인간에게 엄청난 과제이기에 개인적 노력이나 개인주의적으로 자란 인간들이 연합하여 노력을 기울여도 완수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결집된 힘과 일치된 노력이 필요합니다.”154 지속적인 변화를 이루는 데에 필요한 생태적 회개는 공동체의 회개이기도 합니다.
220. 이러한 회개에는 여러 가지 태도가 필요한데, 이러한 태도들이 서로 어우러져 관대하고 부드러움이 넘치는 돌봄의 정신을 촉진하는 것입니다. 먼저 감사와 무상성의 태도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랑으로 선물하셨음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이, 아무도 보지 않고 인정하지 않더라도 거저 주는 희생의 태도와 관대한 행위를 일으킵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3-4). 또한 이러한 회개는 우리가 다른 피조물들과 분리되어 있지 않고 우주의 다른 존재들과 더불어 커다란 우주적 친교를 이루고 있다는 사랑에 넘치는 인식을 포함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세상을 밖에서가 아니라 안에서 바라보면서,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모든 존재와 결합시켜 주신 유대를 깨닫습니다. 생태적 회개는 하느님께서 우리 저마다에게 주신 고유한 능력을 증진시켜 창의력과 열정을 북돋아 주어,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하느님께 자신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마 12,1)로 봉헌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탁월함을 개인적 영광이나 무책임한 지배의 근거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에서 비롯된 막중한 책임감을 부여하는 특별한 능력으로 이해합니다.
221. 이 회칙의 서두에서 제시한 우리 신앙에 대한 여러 확신들이 그러한 회개의 의미를 풍부하게 해 줍니다. 여기에는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모습을 어느 모로 반영하며 우리를 가르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또는 그리스도께서 이 물질세계에 몸소 오시고 이제 부활하시어 모든 존재의 내면에 현존하시며 사랑으로 감싸 주시고 당신 빛으로 밝혀 주신다는 확신이 포함됩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며 그 안에 인간이 무시하지 말아야 하는 질서와 역동성을 새겨 주셨다는 인식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참새들에 대하여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루카 12,6)라고 하신 말씀을 읽고서도, 새들을 소홀히 대하거나 해칠 수 있습니까? 저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회개의 이 차원을 분명히 드러내어, 우리가 받은 은총의 힘과 빛이 다른 피조물과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맺는 관계에서도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토록 훌륭하게 실천한 모든 피조물과 이루는 숭고한 형제애의 증진에 이바지할 것입니다.
[내용출처 - https://www.cbck.or.kr/Notice/20210427?gb=K12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