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 대한 외경/찬미받으소서

Ⅳ. 기쁨과 평화[222-227항]

즐거운예언자 2024. 7. 14. 23:59

Ⅳ. 기쁨과 평화


222. 그리스도교 영성은 삶의 질을 이해하는 다른 방식을 제안하고, 소비에 집착하지 않고 깊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예언적이고 관상적인 생활 방식을 독려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포함하여 다양한 종교 전통들 안에 담겨 있는 오래된 가르침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곧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라는 확신입니다. 소비의 기회가 끊임없이 생겨나 분심이 들고 모든 것과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게 됩니다. 이와는 반대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모든 실재 앞에서 차분히 머무르는 행위는 우리 이해의 폭을 넓히고 인간의 실현에 이르는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 줍니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절제를 통하여 성숙해지고 적은 것으로도 행복해지는 능력을 제안합니다. 이는 바로 검소함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검소함은 우리가 작은 것들의 진가를 차근차근 알아볼 수 있게 하고, 삶이 우리에게 주는 기회들에 감사하면서 내 것에 집착하지 않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하여 탄식하지도 않게 합니다. 여기에서는 지배의 논리를 피하고 단순히 쾌락을 쌓는 일을 삼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223.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의식적으로 실천하는 절제는 우리를 해방시킵니다. 이는 부족한 삶도 아니고 열정이 없는 삶도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사실 순간순간을 더 잘 즐기며 사는 이들은 가지지 못한 것을 계속 찾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지 않습니다. 또한 이들은 모든 사람과 사물을 소중히 여기는 것의 의미를 체험하고 가장 단순한 현실에 익숙해져 이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들은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떨쳐 버려 덜 피곤하고 고민도 덜게 됩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특히 다른 것에서 즐거움을 찾고 형제적 만남, 봉사, 능력 개발, 음악과 미술, 자연과의 만남, 기도 안에서 만족할 때 그러합니다. 행복하려면 우리를 마비시키는 특정한 욕구들을 억제하는 법을 알고, 삶이 주는 많은 다른 가능성들에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224. 지난 세기에는 절제와 겸손이 긍정적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개인 생활과 사회생활에서 특정한 덕의 실천이 전반적으로 약화될 때, 환경의 불균형을 비롯하여 많은 불균형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생태계의 통합만을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간 삶의 통합에 대하여 당당히 이야기하고, 모든 위대한 가치들을 촉진하고 결합해야 할 필요성을 당당하게 말해야 합니다. 우리가 겸손하지 못하고 인간이 아무런 제한 없이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신하게 되면 결국 사회와 환경에 해를 입히게 될 뿐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자립적 존재로 여기고, 우리의 삶에서 하느님을 배제하고 우리의 자아를 그 자리에 앉히면, 그리고 무엇이 선한지 무엇이 악한지를 규정하는 우리의 주관을 믿는다면, 앞에서 말한 건전한 겸손이나 행복한 절제의 증진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225. 더 나아가, 어느 누구도 스스로 평화롭지 않고서는 절제하면서도 만족한 삶을 이룩할 수 없습니다. 영성에 대한 바른 이해는 평화가 전쟁이 없는 상태보다 더 넓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는 것과 부분적으로 관련됩니다. 내적 평화는 생태계 보호와 공동선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제대로 이루어진 내적 평화는, 삶의 깊이로 이끄는 경탄의 능력이 함께하는 조화로운 생활 양식에 반영됩니다. 자연은 사랑의 언어로 넘치지만, 소음이 계속되고 근심과 혼란이 이어지며 겉모습만이 숭배된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은 부조화를 느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서두르면서 마치 자신이 뭔가를 이룩하고 있다고 느끼고자 일을 최대한 빨리 처리합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사람들은 다시 주변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는 환경에 대한 태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통합 생태론에는 피조물과 평온한 조화를 되찾고, 우리의 생활 양식과 이상에 대하여 성찰하며, 우리 가운데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것들 안에 살아 계신 창조주를 바라보는 데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그분의 현존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고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155

226. 우리는 태도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차분한 태도로 살아가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걱정하지 않고 지금 누군가와 온전히 함께할 수 있으며, 순간순간을 하느님의 선물로 여겨 충만하게 살아가려는 마음가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들에 핀 나리꽃과 하늘의 새들을 바라보라고 권유하셨을 때나, 당신께 질문하는 부자 청년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마르 10,21) 말씀하셨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자세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간과 피조물과 온전히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피상적이고 공격적이며 충동적인 소비자로 만드는 병적인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227. 식사 전후에 잠시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이 이러한 태도를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저는 모든 신자가 이 소중한 관습을 다시 받아들여 내면화하기를 바랍니다. 비록 짧지만 이러한 축복받은 시간은 우리의 생명을 하느님께 의존하고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또한 우리에게 피조물을 선물하신 것에 대하여 더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갖도록 해 주고, 노동을 통하여 이 음식을 우리에게 마련해 준 이들을 떠올리게 하며, 가장 궁핍한 이들과의 연대를 재확인시켜 줍니다. 

[내용출처 - https://www.cbck.or.kr/Notice/20210427?gb=K12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