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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와 함께하는 십자가의 길
    기도/십자가의 길 2025. 4. 16. 15:00

    세월호와 함께하는 십자가의 길

     

    묵상: 박재범 신부 / 사진: 노순택 작가 / 구성: 바오로딸  

    + 시작 기도

    예수님,
    오늘도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가고자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가신 수난의 길이건만, 제게는 마지못해 걸어가는 길, 그마저도 사순시기에만 걷는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셨지만 저는 제 십자가를 지기보다 주님의 십자가에 슬그머니 손만 걸쳐놓고 힘들다 불평합니다.
    십자가는 고난이라 여기는 어리석음이 저를 에워쌉니다. 자신의 구원만을 바라는 마음이 속살을 다 드러냅니다. 하지만 이런 뉘우침도 그때뿐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걷는 제 모습은 성찰마저도 이토록 나약합니다.

    주님,
    이제 더 이상 십자가의 고난에 주저앉지 말게 하소서.

    당신처럼 다른 이들의 아픔을 한껏 안으며 그들과 하나 되게 하소서.
    십자가의 길이 이 천 년 전 나자렛 예수가 걸었던 과거의 길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를 위해 기꺼이 걸어가시는 구원자 예수의 길임을 알게 하소서.
    제힘으로 무턱대고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걸어감을 알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님의 수난에 진정으로 참여하는 구원의 길을 걷게 하소서.
    이 길을 마칠 즈음,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의 모습으로 부활하게 하소서.
    아멘.

     

     

    제 1처 예수님께서 사형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사형.
    사형은 극악무도한 죄인에게 내려지는 형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말씀하셨고 기쁜 소식을 전하셨으며 사랑을 살아가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께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도 그러했습니다. 가냘프고 순수한 아이들과 교사들, 누군가의 부모, 형제, 아들, 딸들이 죽었습니다. 
    굳이 죄를 묻는다면, ‘움직이지 마라. 가만히 있어라.’ 그들이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그것이 죄였을까요?
    그것이 죄라면 저도 죄인입니다. 저도 사형입니다.

    주님, 
    오늘도 무관심하고 무책임하게 살며 아프고 소외된 이들을 바라보지 않는 제 모습을 돌아보게 하시고 가만히 있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제 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니다

    제게 건네진 십자가 앞에서 망설여집니다.

    이 십자가만 보면 깊은 탄식이 흘러나옵니다. 
    하물며 함께 살았던 가족, 특히 자식들을 먼저 떠나 보낸 부모는 날마다 애간장이 녹는 심정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겠지요.
    세월호 속에 아이를 묻은 부모들의 십자가에 비하면 제 십자가는 아무것도 아닐 텐데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왜 이리 힘이 드는지요. 저는 이렇게 나약합니다. 그래서 더 미안합니다.

    주님, 
    자신의 작은 십자가만 든 채 세상을 다 안다고 쉽게 말하는, 다른 사람의 고통은 별거 아니라고 섣불리 말하는 그런 교만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제 3처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저를 사람들이 비웃고 손가락질합니다. 
    어리석은 줄도 모르고 자신들의 생각이 옳다며 윽박지르니 그동안 믿어왔던 신앙과 정의가 뿌리째 흔들립니다.
    그런 가운데 고통받는 이들 앞에 부끄러워 넘어지고 정의를 외치는 군중들 사이에 외로워 넘어집니다. 
    그런 저를 향해 손을 내미는 이들이 있습니다.
    세월호라는 이 시대의 차갑고 무거운 십자가, 그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이들이 저에게 손을 내밉니다. 같이 가자고 합니다. 
    바닷속에 잠겨있는 세월호를 짊어진 이들이 저를 잡아 일으킵니다.

    주님, 
    다시는 부끄러움과 외로움으로 넘어지지 않게 하소서.
    행여 또다시 넘어진다 하더라도 당신의 손을 잡고 힘차게 일어서게 하소서.

     

     

    제 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돌보시기 어려워 세상에 어머니들을 보내셨다고 했던가요?
    십자가를 지고 가는 아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성모님처럼 자식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던 부모들.
    골든타임을 다 흘려보내고도 희망을 놓지 않고 일상을 팽개친 채 팽목항을 지키고 실성한 사람처럼 우리 아이를 살려달라고 목 놓아 울던 우리의 성모님들.
    그 가슴 찢는 아픔에 어떠한 위로도 할 수 없어 그저 마른 눈물만 삼킵니다. 

    주님,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부모에게 용기를 주시고, 자식을 먼저 떠난 보낸 부모들에게 아버지 하느님의 따뜻한 위로를 주소서.

     

     

    제 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 짐을 묵상합시다

    누군가를 위로해보려고 많은 말을 했습니다. 때로는 말이 필요 없는데도 말입니다. 
    상처 난 이들을 도와주려 그들 대신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그 항의가 그들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다 안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섣부른 위로로 그들을 상처 낸 뒤에야 깨닫게 됩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곁에서 묵묵히 함께 해주는 것임을…

     

    주님,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주님의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간 시몬처럼 그들의 십자가를 함께 지게 하소서.

     

     

    제 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합시다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뒤따랐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가까이 가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 뿐입니다.
    그들 사이로 걸어 나오는 베로니카. 예수님 앞으로 당당히 나아가 얼굴을 닦아드립니다.
    그런 용기를 갖고 싶습니다. 그런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세상의 힘든 이들, 소외되고 아픈 이들의 얼굴을 닦아 줄 수 있는 베로니카가 되고 싶습니다. 
    내가 아닌 너를 닦아 줄 수 있는, 누군가를 가슴에 묻은 이들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베로니카가 되고 싶습니다.

    주님, 
    오늘도 용기 내어 누군가의 눈물을 아픔을 닦고 있는 수많은 베로니카들과 함께 하여 주소서.

     

     

    제 7처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넘어져서 생긴 상처를 바라봅니다. 
    살짝 긁혀서 툭툭 털고 일어난 적도 있고 상처가 깊어 꿰맨 적도 있습니다. 쉽게 아물지 않아서 피가 나고 쓰라렸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그렇게 생긴 상처는 시간이 가면 아물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오만과 거짓으로 넘어져 생긴 상처는 쉽게 낫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긴 상처는 잘못에 대한 책임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 보이는 솔직함과 무엇보다도 진정한 회개와 반성으로만 치유될 수 있습니다. 

    주님, 
    잘못을 숨기기보다 인정하고 거짓이 아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이가 되게 하시고, 그것을 통해 주님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가 되게 하소서.

       

     

    제 8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

    위로, 그것은 희망입니다. 이 희망이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절망의 포구였던 팽목항이 희망의 포구로, 촛불을 밝히던 광화문광장이 희망의 광장으로, 기다림의 노란 리본이 희망의 리본으로 이어지게 하소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이 서로의 손을 맞잡고 위로와 희망의 춤을 출 수 있는 날을 기다려 봅니다. 
    진정한 위로로 서로의 어깨를 안으며 그날을 향해 걸어갑니다.

    주님,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 앞에서 주님의 뜻을 이해하기 힘이 듭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만나게 하시고 고통 중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제 9처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제 편견과 고집으로 또는 위로를 가장한 위선으로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을 넘어뜨립니다.
    사람들은 저처럼 그렇게 세월호를 넘어뜨립니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침몰시킵니다. 
    이제 잊으라며 침몰시킵니다. 그저 가슴에 묻으라며 더 깊이 침몰시킵니다. 
    걸림돌로 살아온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저로 인해 넘어진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용서를 청합니다. 
    이 보잘것없는 속죄가 더 늦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주님, 
    걸림돌로 살아온 삶을 돌아보게 하시고 속죄하게 하소서.
    저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을 당신의 위로로 치유해 주소서.

     

     

    제 10처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을 묵상합시다

    이만큼의 보상, 그 정도의 관심이면 충분하다고, 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쉬자고, 지쳤으니 이제 그만하자고 말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예수님 옷을 벗긴 사람들처럼 그들의 옷을 아무렇지도 않게 벗겨내고 있었습니다. 고통 앞에 중립은 있을 수 없는데 말입니다.
    이런 저에게 그들은 이제 그만해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보상과 관심이 아닌 진실규명을 바란다며 묵묵히 세월호를 지고 오늘도 변함없이 길을 걸어갑니다.

    주님, 
    누군가의 옷을 벗기려 하기 전에 저를 먼저 돌아보게 하시고, 그들의 옷을 추슬러 주며 진실을 향한 걸음에 동참하게 하소서.

     

     

    제 11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묵상합시다

    아무렇지도 않게 누군가의 가슴에 못 하나를 꽂습니다. 그리고 잘했다고 손뼉을 치며 힘주어 망치를 들고는 또 다른 누군가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 말 없이 못과 망치 앞에 손을 내미셨듯이  그렇게 묵묵히 손을 내미는 이들이 있습니다.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세상, 진실이 침몰한 세상을 아파하며 참이 거짓을 이기는 세상을 위해 스스로 못 박히겠다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제야 못과 망치를 버리고 그들 앞에 머리를 떨굽니다.

    주님, 
    십자가의 못은 거짓을 이겨내는 진실이며, 위선을 이겨내는 겸손이며, 나를 죽이고 너를 살리는 도구임을 깨닫게 하소서.

     

     

    제 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우리는 언제나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삶을 묵상하다 보면 참된 죽음이야말로 참된 삶임을 깨닫게 됩니다.
    타인을 위해 나를 내어놓는 그 거룩한 죽음 앞에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무슨 이유일까요.
    모름지기 불편함이란 나 혼자 살겠다고 남을 밟고 설 때 생기는 마음일진대… 
    거짓과 참의 갈림길에서, 헛된 삶과 거룩한 죽음의 갈림길에서 작고 여린 노란 리본이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죽음 너머에 부활이 있음을 알게 해 줍니다. 

    주님, 
    당신의 마지막 숨소리를 기억하게 하소서. 그 숨소리를 통해  세상에 숨을 불어넣으신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여 영원한 생명을 살게 하소서.

     

     

    제 13처 제자들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을 묵상합시다

    고통이 잠시 멈춘 시간입니다.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갑니다.
    빈 십자가와 빈 교실, 그들의 빈자리가 저 너머에 보입니다. 
    갈등과 오해, 고통과 아픔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 싫어서 귀를 닫고 눈을 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짓을 넘어 갈등과 오해를 이겨내고 진실과 진리를 찾아 고통과 아픔을 끝내야 합니다.
    누군가는 세월호의 아픔을 이념적으로 보겠지만 누군가는 기억하며 자신을 성찰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모두 고통과 아픔이 없는, 갈등과 오해가 없는 곳에서 편히 쉬소서.

    주님, 
    저희를 위해 내어주신 당신의 삶을, 당신의 말씀을 살게 하소서. 
    언제까지나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게 하소서.

     

     

    제 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무덤은 영원한 안식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무덤을 바라보는 우리는 치열함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그들이 살아내지 못한, 그들이 남겨놓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들 모두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고,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들을 위해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그대로 계시는지, 되살아 나신 건지 무덤을 마주한 채 의심하며 바라만 보는 이의 모습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과 말씀을 묵상하며, 그들의 몫까지 힘차게 부활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 
    삶을 성찰하고 고뇌하며 다시 일어서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시어 언제나 주님의 부활을 살아가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소서.

     

     

    사순시기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습니다.
    모이는 사람들에 따라 공감하며, 예수님이 걸으신 길을 묵상 할 수 있도록 여러 십자가의 길을 모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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